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태 타이거즈 버스 방화 사건 (문단 편집) === 손해배상 분쟁 === 당시 불에 타 버린 차량은 [[아시아자동차|아시아자동차공업]](현 [[기아]])[* 공교롭게도 2001년에 기아가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여 [[KIA 타이거즈]]가 되었다.]의 [[기아 AM버스|AM919]]로 당시 출고된 지 1년밖에 안 된 차량이었다. 8,900만원에 달하는 차량[* 2020년 기준으로 AM919 버스의 후속모델인 [[그랜버드]] 버스의 차량가격이 약 1억 8000만원이다. 사건 당시 8,900만원은 2020년 기준으로 1억 8000만원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이 통째로 타 버렸으니 가난한 해태 구단은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참고로 당시 대학 등록금이 50만원 정도, 당시 기준으로 출시한 지 얼마 안 되었던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제품|플래그십]] 고급차인 [[현대 그랜저#s-2.1|1세대 현대 그랜저]]의 가격이 1,690만원~2,500만원이었으니 8,900만원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그랜저는 같은 해 7월에 출시했다. V6 3.0L 모델은 1989년 출시 이전이었다. [[https://auto.naver.com/car/main.nhn?yearsId=48685|#]]] 이에 대해 누가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엄밀히 말하면 불을 지른 건 관중들이니 관중들이 책임을 져야 겠지만 하고 많은 관중들 중 일부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누가 불을 질렀는지 찾는 것도 불가능했다. 홈 구단이었던 삼성은 KBO의 책임을 주장하면서 피해 보상을 완강히 거부하고 버티면서 KBO와 갈등을 빚었다. 당시 생중계를 보고 있던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저 불 낸 것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묻자, 임원들은 "한국시리즈는 KBO가 주재하는 것이므로 삼성은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그룹 총수와 수뇌부의 의견이 이랬기 때문에 삼성 구단은 한푼도 보상할 수 없다며 배를 째라는 식으로 버텼다. 삼성 구단 측은 당시 정규시즌에서 플레이오프까지는 홈 팀이 주관하지만 한국시리즈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관하므로 전적으로 KBO의 책임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구]]자 선정.] 이에 대해 KBO는 한국시리즈의 공정한 진행을 위해 경기를 주관할 뿐 관중 난동과 같은 부분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배상 문제는 삼성의 버티기로 해를 넘겨서도 지속되었다. 결국 해가 바뀌어 [[1987년]], 빡칠 대로 빡친 KBO는 다른 구단들의 힘을 빌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구단주 회의를 주최했다. 그러자 사태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갖고 있던 [[이건희]] 구단주(당시 삼성그룹 부회장)가 사건 수습을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 1987년 1월 12일 각 구단의 그룹 총수들이 참여한 총회가 열렸고 결국 이 회의에서 삼성 구단이 피해액의 사실상 전액을 배상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며 앞으로도 한국시리즈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홈 구단이 변상을 비롯한 모든 책임을 지는 규정이 추가되었다. 이후 삼성은 버스 수리비 및 버스 안에 있던 선수 물품들을 보상해 주었다. 삼성은 새 차를 사주는 대신 전소된 버스를 어떻게든 수리하여 살려내는 방법을 강구했고 그 결과 정확한 액수는 비공개지만 대략 차 수리비의 전액인 5,000여만 원[* 또는 신차 가격인 8,000여만 원의 반액이라는 설도 있다.]을 배상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응용]] 감독이 이 사건을 회고하길, 삼성이 모든 것을 보상해준다고 하자 갑자기 [[김봉연]]이 "사실 그 안에 새 양복이 있었다, 방망이도 10개 정도 있었다!"는 식으로 불에 타서 존재가 불분명한 물건들을 적더니 다른 선수들도 있지도 않은 물건의 손해를 전부 배상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강짜를 부렸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없는 물건값을 청구해서 따로 챙긴 선수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다만 [[송유석]]이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해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버스 좌석 밑에 본인의 월급 20만원을 찾아서 뒀는데 한 달 살림을 해야 할 그 돈이 홀라당 없어진지라 굉장히 힘들었다고 했다. 위의 김봉연의 일화와는 정반대된 내용이다. 하지만 1985년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프로 3년차이자 선수단 막내였던 송유석과 팀내 최고참이자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인 김봉연은 팀내 입지가 달랐기 때문에 송유석은 자신의 피해액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이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삼성 구단 홍보 관계자는 당시 배상 문제에 대해 “삼성 구단에서는 KBO가 내야 한다, 우리는 못 낸다고 주장했지만, 나중에 수리를 해준 걸로 알고 있다. 지금 같으면 KBO가 내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위 구단주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으로 지금은 한국시리즈를 포함한 모든 경기에서 홈 팀이 배상책임을 진다. 사건 이후에도 [[영호남 지역갈등]]이 여전했고 하필 당시 극강의 실력을 자랑하던 해태는 영남 구단인 삼성과 롯데를 [[승점자판기]]처럼 다뤘기 때문에(...) 해태 선수들을 향한 영남 팬들의 오물 투척과 위협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해태 야구단은 대구를 비롯한 영남지역 원정에 나설 때마다 경찰관들의 호위를 받게 되었다. 때문에 해태 선수단은 대구, 부산, 마산 원정 때마다 상당한 불편과 행동의 제약을 받았다고 한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5716&yy=2011|매일신문 [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⑫1986년 해태 선수단 버스 방화사건]] [[http://www.samsunglions.com/history/history_5_10.asp#jsHistory21_3|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관련 자료]][* 2002년 한국시리즈 첫 우승 후 발간된 삼성 라이온즈의 사사(社史)인 '삼성 라이온즈 21'에서 발췌한 내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